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02년 가계 신용카드 대출 부실 사태 (문단 편집) ==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 == 이 사태로 인해 IMF를 극복하고 천천히 회복 기조를 타던 한국 경제는 다시 한 번 내수 부진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카드 대란 발생 2년여 후인 2004년 정부가 지속적인 대책 마련 및 적극적인 경기 부양 정책을 꾸준히 냈으나 [[1997년|7년 전]] 외환 위기, [[2002년|2년 전]] 카드 대란 사건 때문에 시민들의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되어 한국 경제가 여전히 정상 경로로 돌아오지 못했다.[* 특히 정부가 구제 해법을 모색한 2004년에 안 그래도 한국에서는 카드 대란 때문에 난리였는데 물가와 국제유가까지 계속 오르던 시기인지라 내수 부진은 모면할 수는 없었다.] 이 사태 이후 '[[신용 불량자]]'라는 용어가 상당히 대중화되었으며 개개인이 자신의 신용등급에 굉장히 신경을 쓰게 되는 계기를 제공하는가 하면 카드사들의 부실 정리 과정에서 외환카드의 부실을 채 막지 못한 외환은행이 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매각되는 계기를 제공하는 등 오랜 기간 동안 (관점에 따라서는 지금도) 한국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태이다. 카드대란의 여파는 [[출산율]] 하락에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카드대란이 한창이었던 2005년은 합계출산율 1.09명과 43만 명대를 기록해 2017년 이전까지 출산율 최저점을 기록한 해였다. 2005년생은 2000년대생 중 가장 적은 수치로서 초저출산이 시작될 당시 태어난 2002년생(49만 명)과 비교해 약 6만 명 차이가 나며 황금돼지해 속설로 [[2006년|전년]] 대비 약 4만 명 넘는 출산율 상승을 기록한 2007년생(49만 명)과도 약 6만 명 정도 차이가 난다. 또 40만 명대를 기록한 마지막인 2016년생(40만 명)과도 불과 3만 명 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이는 2002년 이후 시작된 초저출산의 심각성을 잘 나타내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외환위기의 여파로 저축률이 급속히 하락하게 되었는데 이때 내수활성화를 명목으로 정부가 소비의 미덕을 부추긴 것이 첫째 원인으로 꼽힌다. 중소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조차 이제 막 그로기 상태에서 벗어나던 참이었기 때문에 정부는 세수를 기업이 아닌 민간으로부터 뽑을 궁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자율을 10%대에서 4%대로 내렸고 신용카드 사용을 활성화하는 정책을 동시에 펼치며 정책적으로 소비를 권장하기 시작하자 저축률은 급락했다. [[지름신]]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난 것도 당시의 사회 풍조를 반영한 것이다. || [[파일:external/www.iusm.co.kr/269683_96262_545.jpg|width=300]] || [[파일:external/news.chosun.com/2007020500786_1.jpg|width=230]] || |||| [[파일:한국가계저축률.jpg|width=550]] || 카드 대란의 영향으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던 2003년에는 당시 기준 역사상 이혼률이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는 말도 있는데 이는 당시 기사가 과장한 측면도 있는 것이 원래 고령 인구가 느는 추세였기 때문에 결혼가구 대비 이혼가구 비율은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국의 생활양식이 점점 서구화되면서 항상 이혼률은 올라가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애초에 이혼율 자체가 올해의 결혼한 인구 대비 이혼한 인구이기 때문에 이혼인구가 그대로여도 결혼 인구가 줄어들면 이혼율도 상대적으로 증가한다. 어떤 기준으로 추산하느냐가 문제. 이 사건의 여파로 인해 [[자살]]률과 범죄율도 한때 증가하기도 했다. 특히 2003년과 2004년 사이에 심했는데 실제로 억대 카드빚을 진 딸에게 증오를 느낀 60대 남성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도 더 나아가서는 [[인천광역시]]의 [[인천 일가족 자살사건|한 일가족이 자살]][* [[부평구]]의 모 아파트에서 일어났던 사건으로 사업에 실패한 한 남성이 실직 이후 생활고를 겪고 있었으며 생활비 조달을 위해 3천만원의 채무를 지고 있었다. 자살 당시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살기가 싫다. 죽고 싶다.''''라는 끔찍한 유서를 남기고 8살 딸과 6살 아들을 아파트 계단 창문에서 던진 후 막내인 3살 딸을 안고 뛰어내렸다. 이후 인터넷 카페 등지에서 추모글이 올라오는 등 사회적으로도 충격을 주었다.] 하는 등의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카드 대란으로 집안이 아작나는 꼴을 보자 국민들의 신용카드 사용 방식이 매우 보수적으로 변화했다. 현금서비스 이용액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정부의 신용카드 규제 강화와 함께 건전성이 높아졌다. 카드대란은 국민의 다수가 금융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게 해 준 계기가 되었고 재테크는 일상용어로 자리잡았다. 그나마 명목상으로 남아는 있던 '소비의 미덕'은 내수 침체가 조금 진정되는 국면에 접어들 즈음 [[대침체|공포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2008년]]이 도래하면서 사멸하다시피 했다. 이후 [[저 놈의 몸에 생기가 돌아온다|그나마 내수에 활기가 돌아오나]] 싶었더니 [[2020년대]] 들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등으로 인한 [[무지출 챌린지]] 때문에 소비의 미덕이라는 용어를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파일:external/file.dailian.co.kr/news_1386137305_408106_m_1.jpg]] 카드 대란의 주된 요인이었던 현금서비스는 사태 이후 급격히 규모가 줄어들어 2년 뒤에는 건수는 절반, 금액은 1/3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이후에도 서브프라임 모기시 사태가 벌어진 2008년에 소폭 증가한 것을 제외하면 서서히 이용이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다. 또 2012년 말에는 현금서비스의 [[리볼빙]] 서비스가 금지되면서 2015년에는 이용액이 60조원 아래로 떨어졌다. 이는 현금서비스의 문제점이 신용카드 사용자들에게 충분히 퍼진 데다 현금을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분야가 줄어들면서 정상적인 신용카드 이용을 하는 사람이 현금서비스로 현금을 찾아야만 하는 필요성이 크게 줄어든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카드 돌려막기 등의 이유로 신용카드의 현금서비스는 여전히 쓰이고 있으며 현금서비스를 대체하는 카드론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분류:2000년대 사건사고]][[분류:금융 사건 사고]][[분류:대한민국의 경제사]] [[분류:국민의 정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